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네르 (문단 편집) === 최후 === 원래 스트로에스네르는 파라과이로 돌아가 고국에서 죽으려고 했지만 파라과이 정부에 의해 강력한 비난과 체포의 위협을 받았고 결국 스트로에스네르는 [[2006년]] [[7월 16일]]에 탈장 수술을 받은 후 폐렴 합병증이 악화되어 삽관 치료까지 해야 했으며 그로부터 정확히 1달 뒤인 [2006년 [[8월 16일]] 오전 11시에 끝내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브라질리아에서 가족들에게 둘러싸인 가운데 94세를 일기로 피부암과 폐렴 합병증으로 인한 패혈성 쇼크로 사망했다. 사망 당시 스트로에스네르의 몸무게는 겨우 45kg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시신은 사망 하루 뒤인 8월 17일에 그의 가족들과 친구 일부만 참여한 가운데 브라질리아의 공동묘지에 비공개로 매장되었다. 그가 죽을 때 파라과이 사람들은 과거의 일이라며 그의 죽음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당시 [[니카노르 두아르테]] 대통령은 스트로에스네르의 국장은 물론이고 유해 송환도 거부하여 지금도 스트로에스네르는 브라질리아의 공동묘지에 묻혀있다. 참고로 스트로에스네르의 사망 당일 파라과이 하원 회의에서 후안 비센테 라미레즈(Juan Vicente Ramírez) 차관은 전직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 1분간의 묵념을 제안했지만 이에 항의한 의원들이 자리를 떠나면서 회의는 중단되었다. 한편 스트로에스네르의 아내는 남편이 쫓겨난 후 남편이랑 같이 브라질로 도피했다가 후에는 미국의 [[마이애미]]로 이주했으며 남편의 사망으로부터 약 반 년 전이었던 [[2006년]] [[2월 3일]]에 96세를 일기로 사망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날은 남편을 몰아낸 쿠데타가 일어난 지 정확히 17년이 되는 해였다. 그러나 파라과이의 젊은 사람들 중에는 상술한 만행들에도 스트로에스네르의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는데 이는 파라과이에서 스트로에스네르 세력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에서 비롯된다. 실제로 야당 상원의원 에스페란자 마르티네즈(Esperanza Martínez, 1959~)의 말에 따르면 '독재 정권의 종식은 정권 자체의 주역들에 의한 똑같은 구 체제의 개편에 불과하며, 그들은 동일한 정치 및 경제 모델을 그대로 두었다'고 언급했고 파라과이의 교육 시스템에서는 그의 독재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고 한다. 2009년 여론 조사에 따르면 파라과이 국민의 41%는 스트로에스네르가 여전히 집권했다면 나라가 더 잘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하며 스트로에스네르의 추종자들은 늦어도 2018년까지 '행복한 날'에 파라과이의 대통령궁 앞에서 스트로에스네르의 생일을 성대하게 축하하는 파티를 지속해 왔고 덤으로 2018년에 당선된 전 파라과이 대통령인 [[마리오 아브도 베니테스]][* 비록 아버지가 쌓은 막대한 부 덕에 대통령의 손자가 다니던 명문 학교에 다닐 수 있었지만 적어도 본인은 스트로에스네르가 축출될 때 만 17세의 소년에 불과했기 때문에 스트로에스네르의 만행들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의 아버지는 스트로에스네르 시기 대통령비서실장이자 '황금 4인조'의 일원으로 알려진 최측근이었다. [[분류:아메리카의 독재자]][[분류:파라과이의 정치인]][[분류:파라과이의 군인]][[분류:파라과이 대통령]][[분류:1912년 출생]][[분류:2006년 사망]][[분류:독일계 파라과이인]][[분류:스페인계 파라과이인]][[분류:이타푸아 주 출신 인물]][[분류:군인 출신 정치인]]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